
본문 범위 창세기 28장 10절-22절
사다리를 붙잡고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 다들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12절을 그대로 읽으면 오르내린 쪽은 하나님의 사자이고 야곱은 누워 있습니다. 벧엘도 찾아간 곳이 아니었고요. 널리 퍼진 그림을 한 장씩 내려놓고 28장에 적힌 문장만 따라가 봅니다.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 그림부터 내려놓습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 대개 한 사람이 사다리를 붙잡고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이 먼저 나옵니다. 한 계단씩 올라가는 믿음, 위를 향해 애쓰는 사람. 그런 이야기로 기억하는 분이 많습니다.
12절은 이렇게 적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오르내린 쪽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야곱이 아닙니다.
야곱이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앞뒤 절이 알려 줍니다. 11절에서 돌을 베고 누워 잤고, 16절에서 잠이 깹니다. 꿈이 시작될 때 누워 있었고 꿈이 끝날 때도 누워 있었습니다. 그 밤에 야곱은 한 계단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사다리의 방향도 한쪽이 아닙니다. 땅 위에 서 있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는데, 사자들은 오르락 내리락합니다. 위로만 가는 길이 아니라 위아래가 트인 길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자는 사람이 아니라 서 계신 분입니다.
오르락 내리락한 것은 하나님의 사자였고, 야곱은 그 밤 내내 누워 있었습니다.
벧엘은 찾아간 곳이 아니었습니다

벧엘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처음부터 거룩한 자리였을 것 같고, 야곱이 기도하러 올라간 곳처럼 들립니다. 본문은 그렇게 적지 않습니다.
10절은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하고 시작합니다. 목적지는 하란입니다. 그다음 11절이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하고 이어집니다. 도착한 게 아니라 해가 져서 멈춘 겁니다. 잘 곳을 고른 흔적도 없습니다.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잤습니다.
이름도 나중 일입니다. 19절이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하고 적은 뒤에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하고 덧붙입니다. 벧엘은 그 밤을 지나고 아침에 붙은 이름입니다. 해가 질 때 그 자리는 루스였고, 야곱에게는 그냥 한 곳이었습니다.
왜 걷고 있었는지도 27장이 말해 둡니다. 에서가 심중에 아우를 죽이겠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리브가가 하란의 라반에게 피하라고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길은 순례길이 아니라 도망길입니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날 동안이라던 말을 등에 지고 걷던 중이었습니다.
해가 져서 멈춘 자리였고, 벧엘이라는 이름은 그다음 날 아침에 붙었습니다.
속인 일을 두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앞 장이 워낙 세다 보니 28장을 읽을 때 마음이 먼저 앞서갑니다. 이제 혼날 차례겠구나, 여기서 뉘우치겠구나 싶습니다. 실제로 야곱이 벧엘에서 회개했다고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3절부터 15절까지를 그대로 읽어 보면 전날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이 한 줄도 없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하고 자기를 밝히시고,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고 이어집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이 그대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15절이 덧붙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도망 중인 사람에게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조건은 달리지 않습니다.
야곱의 첫마디도 뉘우침과는 결이 다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합니다. 이어서 두렵도다 이 곳이여, 하고 말합니다. 잘못을 아뢰는 말이 아니라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사람의 말입니다.
20절부터 22절의 서원은 조건문이라 흥정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그런데 함께 계시고, 지키시고, 돌아가게 하신다는 세 가지는 이미 15절에 나온 말입니다. 본문은 이 서원을 두고 잘했다 못했다 판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순서는 분명합니다. 약속이 먼저 있었고 서원이 나중입니다.
13절부터 15절까지, 전날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은 한 줄도 없습니다.
그림과 문장이 어긋난 자리는 어디였을까

첫째는 사닥다리라는 말 자체입니다. 사다리는 사람이 오르려고 세우는 물건이니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오르는 사람이 따라 나옵니다. 본문은 사다리를 놓여 있는 것으로만 적고, 움직이는 쪽은 따로 지목해 둡니다.
둘째는 28장을 27장의 결말로 읽는 버릇입니다. 속인 사람 다음에는 대가가 오는 게 이야기의 순리 같습니다. 그래서 없는 질책과 없는 회개를 읽는 사람이 채워 넣게 됩니다. 야곱이 치를 것은 하란에서 이십 년에 걸쳐 나오지, 이 밤에 오지 않습니다.
셋째는 서원이 워낙 유명하다는 점입니다.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는 22절이 먼저 떠오르니 그 앞에 무엇이 있었는지가 흐려집니다. 13절부터 15절이 먼저라는 것만 제자리에 놓아도 장이 다르게 읽힙니다.
그림을 다 내려놓고 남는 것을 세어 보면 몇 가지 안 됩니다. 사다리가 서 있었고, 사자들이 오르내렸고, 여호와께서 그 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자다가 깨서 놀랐고, 베던 돌을 기둥으로 세워 기름을 붓고, 그 자리에 이름을 붙이고, 서원했습니다. 28장에 적힌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고는 29장 첫 줄이 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하고 이어집니다. 그 밤 뒤로도 길은 그대로 남아 있고 야곱은 다시 걷습니다. 달라진 것은 길이 아니라 그 길에 함께 있겠다는 말을 듣고 걷는다는 점입니다.
야곱이 한 일은 자고, 깨고, 돌을 세우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묵상 포인트
- 첫째,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는 16절이 오래 남습니다. 안 계시던 분이 오셨다는 말이 아니라 계셨는데 몰랐다는 말입니다. 몰랐다는 것과 없었다는 것은 다릅니다.
- 둘째, 약속이 먼저입니다. 함께 있겠다, 지키겠다, 돌아오게 하겠다는 말이 15절에 있고, 같은 내용이 20절에서 야곱의 입으로 다시 나옵니다. 야곱이 새로 내건 조건이 아니라 들은 말을 되뇌는 자리입니다.
- 셋째, 돌 하나가 밤과 아침을 다르게 만듭니다. 머리를 받치던 돌이 아침에는 기둥이 됩니다. 자리는 그대로인데 그 자리를 부르는 이름이 달라졌습니다.
벧엘 이야기는 결국 도망가는 사람의 하룻밤입니다. 해가 져서 멈췄고, 돌을 베고 잤고, 꿈을 꿨고, 놀라서 깼습니다. 대단한 결심도 긴 기도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들은 말은 남습니다. 훗날 하나님이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시면서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이라고 자기를 밝히십니다. 도망하던 때의 그 자리가 그렇게 다시 불립니다. 사다리는 오르는 물건이 아니라 열려 있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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