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범위 창세기 15장 1절-21절, 17장 1절-27절
별처럼 많은 자손이라는 말은 익숙한데,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그때 어떤 자리에 서 있었는지는 잘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15장과 17장을 아브람 한 사람 쪽에서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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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두려워 말라는 말이 먼저 왔어요

15장은 이렇게 열립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위로가 먼저 놓여 있다는 건, 그가 그때 무언가를 무서워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대답이 조금 뜻밖입니다. 감사의 말이 아니라 질문이었어요.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그는 곧바로 한 번 더 말합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 꺼내는 사람은 대개 그 말을 오래 품고 있던 사람이지요.
이 장면의 아브람은 이미 부름을 받고 떠나온 지 한참 된 사람입니다. 가축도 있고 사람도 있고 밟고 있는 땅도 있었는데, 정작 자기 뒤를 이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방패와 상급이라는 큰 말 앞에서 그가 꺼낸 것은 그 빈자리 하나였어요.
나는 무자하오니.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말을 듣고 그가 꺼낸 것은 아직 비어 있던 자리였습니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별을 세어 보라 하셨어요

돌아온 것은 설명이 아니라 이동이었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장막 안에서 오가던 말을 끊고 그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셀 수 없는 것을 보여 준 다음에 몇이라고 알려 주지 않고, 저와 같다고만 합니다. 숫자를 주는 대신 밤하늘을 통째로 건넨 셈이지요.
다음 줄이 이 장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가 한 일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믿었다고만 적혀 있어요.
그런데 조금 뒤에서 그는 또 묻습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믿었다는 문장과 무엇으로 알겠느냐는 물음이 몇 절 사이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본문은 이 둘을 서로 어긋난 것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숫자 대신 밤하늘이 통째로 건네졌습니다.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쪽은 그가 아니었어요

무엇으로 알겠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은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찌니라. 아브람은 그대로 합니다.
그가 한 일이 담담하게 적혀 있어요.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그리고 한 줄이 더 붙습니다.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기다리는 동안 그가 한 일은 새를 쫓는 것이었습니다.
해가 기울면서 장면이 무거워집니다.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두려워 말라는 말로 시작한 장인데, 한복판에 심히 두려워했다는 문장이 놓여 있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들은 말도 좋은 소식만은 아니었어요.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리고 이어집니다.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쪼갠 것들 사이를 지나간 쪽은 아브람이 아니었습니다.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사이를 걸은 쪽은 약속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구십구 세가 되어서야 이름이 바뀌었어요

15장은 그 밤이 언제였는지 적어 두지 않습니다. 대신 17장은 시점을 못 박습니다.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별을 보던 밤과 이 장면 사이에 긴 세월이 지나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름이 바뀝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아직 아들은 없는데 열국의 아비라는 이름부터 받습니다. 아내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로 바뀌고, 그에게서 민족의 열왕이 나리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반응이 솔직합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이미 품에 있는 아들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었던 겁니다.
돌아온 답은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그리고 장의 끝이 이렇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대로 이 날에 집 안의 모든 남자에게 언약의 표징을 행했습니다. 웃었던 사람이 그날을 넘기지 않고 움직였어요. 그때 그는 구십구 세였고, 곁에 있던 이스마엘은 십삼 세였습니다.
아직 아들은 없는데 열국의 아비라는 이름이 먼저 왔습니다.
묵상 포인트
- 첫째, 믿었다는 문장과 무엇으로 알겠느냐는 물음이 같은 장에 나란히 있습니다. 본문은 둘 중 하나를 지우지 않아요. 확신이 흔들리는 날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도 된다는 말처럼 읽힙니다.
- 둘째, 쪼갠 것들 사이를 지나간 쪽은 약속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켜야 할 몫이 어디에 놓였는지를 그 장면이 조용히 보여 줍니다.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다고 여기던 일들을 잠깐 내려놓게 됩니다.
- 셋째, 이름이 먼저 바뀌고 아들은 나중에 왔습니다. 열국의 아비라 불린 그날에도 그의 장막에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 있지 않았어요. 눈에 보이는 변화보다 부름이 먼저 오는 순서가 여기 있습니다.
별을 보여 준 밤과 이름을 바꾼 날 사이에는 여러 해가 놓여 있습니다. 본문은 그 사이를 건너뛰지도, 길었다고 하소연하지도 않아요. 두려워하던 사람이 밖으로 이끌려 나가 하늘을 보았고, 캄캄함 속에서 사백 년이라는 말을 들었고, 한참 뒤에 엎드려 웃고는 그날 바로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그 순서를 그대로 따라 읽어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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