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범위 창세기 4장 1절-26절
가인과 아벨 이야기는 결말을 다 아는 채로 읽게 됩니다. 그래서 형이 아우를 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말을 거셨다는 대목은 자주 지나칩니다. 오늘은 그 짧은 대화를 조금 오래 붙잡아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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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동산 밖에서 처음 기록된 사람의 말이 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고백입니다. 쫓겨난 자리에서도 아이를 얻은 일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어서 아벨이 태어납니다. 본문은 두 아들을 소개하면서 하는 일만 짧게 적습니다.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어느 쪽이 낫다는 말도, 어느 쪽이 못하다는 말도 붙지 않습니다.
형제는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자랍니다. 땅을 갈아 곡식을 거두는 사람과, 양떼를 몰고 다니는 사람. 여기까지는 아무 갈등도 없습니다. 이야기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은 두 사람이 각자의 손에서 나온 것을 들고 같은 자리에 섰을 때부터입니다.
형제의 이야기는 다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개의 일로 조용히 시작됩니다.
안색이 변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십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 문장의 결이 다릅니다. 아벨 쪽에는 첫 새끼와 그 기름이라는 말이 붙어 있고, 가인 쪽에는 땅의 소산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무엇을 드렸는가보다 무엇을 남겨 두었는가가 비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제물보다 사람을 앞에 놓습니다. 아벨과 그 제물, 가인과 그 제물이라고 순서를 잡습니다.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합니다. 그런데 그 얼굴을 보시고 하나님이 먼저 말을 거십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무엇을 잘못했는지 짚기 전에 마음이 어떠한지를 묻는 물음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경고이면서 동시에 여지입니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문 앞에 엎드려 있다는 말은 아직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죄가 문에 엎드렸다는 말은, 아직 그 문이 닫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무슨 말을 건넸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말을 걸었다는 사실과 들로 나갔다는 사실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물음이 다시 옵니다. 3장에서는 네가 어디 있느냐였고, 여기서는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입니다. 숨은 사람을 부르던 물음이 이제는 사라진 사람을 묻는 물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인의 대답은 짧고 차갑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아버지는 곁의 아내를 가리켰고 어머니는 뱀을 가리켰는데, 아들은 아예 모른다고 말합니다. 미루는 자리에서 지우는 자리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입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은 아담에게 수고를 안기던 자리였는데 이제는 아우의 피를 받아 소리를 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가인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말을 듣습니다. 농사하는 자에게 땅을 떠나라는 말은, 그가 살아온 방식 전부를 내려놓으라는 말이었습니다.
형은 모른다고 말했지만, 땅은 알고 있었습니다.
표를 주시고, 다시 씨를 주시고

가인이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하고 고합니다. 뉘우침인지 두려움인지 본문은 굳이 나누지 않습니다. 그가 입에 올린 것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는 일과, 만나는 자가 자기를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십니다. 벌을 거두시지는 않지만, 벌 받는 사람을 아무나 해치지 못하도록 지키십니다. 3장에서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던 손이 여기서는 표를 주시는 손으로 이어집니다.
가인은 여호와의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합니다. 유리한다는 말을 이름으로 가진 땅에서, 그는 성을 쌓고 아들의 이름을 붙입니다. 그 후손에게서 장막과 육축, 수금과 퉁소, 동철로 만든 날카로운 기계가 나옵니다. 떠도는 자리에서도 사람의 살림은 계속 자랍니다.
그런데 그 계보 끝에 라멕의 노래가 붙어 있습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가인을 지키려고 주신 약속을 자기 복수의 근거로 바꾸어 부릅니다. 보호하려던 말이 자랑이 되어 돌아오는 자리입니다.
장은 다른 곳에서 끝납니다. 아담에게 셋이 태어나고, 하나님이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고 적힙니다. 셋도 아들을 낳아 에노스라 하였고,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한쪽에서 노랫소리가 높아지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한쪽에서 복수의 노래가 높아질 때, 다른 쪽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시작됩니다.
묵상 포인트
- 첫째, 누군가와 나를 견주다 얼굴빛이 달라진 적이 있는지 떠올려 봅니다. 그 마음을 덮어 두지 말고 무엇이 서운했는지 한 줄로 적어 봅니다.
- 둘째, 죄가 문에 엎드린다는 말을 오늘 하루에 옮겨 봅니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자리가 어디인지 조용히 살펴봅니다.
- 셋째, 내가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되묻는 대신, 오늘 안부를 물을 한 사람을 정해 봅니다.
창세기 4장은 첫 살인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물음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안색이 변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그러느냐 물으시고, 아우가 사라진 자리에서 어디 있느냐 물으십니다. 벌은 그대로 내려지지만 표가 함께 주어지고, 잃어버린 자리에는 다른 씨가 놓입니다. 동산 밖의 이야기는 그렇게 묻는 음성과 함께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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