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utumn Rhythm: Number 30, 1950 | In Focus · The Met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9월 17일에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 넘버 30, 1950' 하나만 놓고 3분 4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큐레이터가 그림 앞에 서서 물감이 어떻게 떨어졌는지, 어디를 보면 되는지 말한다. 화면 대부분이 그림 표면 클로즈업이라 미술관에서도 못 보는 거리에서 본다. 어디를 눈여겨볼지 정리했다.
어떤 영상인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공식 채널의 'In Focus' 시리즈다. 작품 하나를 골라 담당 큐레이터가 몇 분 안에 풀어 주는 짧은 영상인데, 이번 편은 근현대미술부의 브린다 쿠마르가 맡았다. 9월 17일에 올라왔고 길이는 3분 4초. 내레이션이 아니라 큐레이터가 직접 카메라 앞에서 말한다.
구성은 단순하다. 그림 전체를 한 번 보여 주고, 그다음부터는 카메라가 표면에 붙는다. 검은 선이 갈라지는 자리, 흰 물감이 고여 굳은 자리, 청록색이 스며든 자리를 하나씩 훑는다. 큐레이터가 이 그림 앞을 지나다 발이 멈춘다고, 물감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이 올라온다고 말하는 대목이 앞쪽에 있다. 미술관 직원이 하는 말치고는 꽤 개인적이다.
제목의 '가을'은 계절 이야기이기도 하다. 폴록은 1945년에 아내인 화가 리 크래스너와 뉴욕주 이스트햄프턴의 스프링스라는 동네로 이사했고, 집에 딸린 헛간을 작업실로 썼다. 이 그림은 1950년에 거기서 나왔다. 그해는 폴록이 그림을 가장 많이 그린 해다. 50점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이 그림은 가장 큰 축에 든다.
큐레이터가 직접 말하는 3분. 카메라는 대부분 그림 표면에 붙어 있다.
3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핵심은 한 문장이다. 이건 아무렇게나 뿌린 게 아니다. 큐레이터가 그 말을 하고 나서 방법을 설명한다. 폴록은 커다란 캔버스 두루마리를 바닥에 그대로 펼쳤다. 이젤에 세우지 않았다. 그 위에 막대기, 흙손, 빳빳하게 굳은 붓을 에나멜 페인트 통에 담갔다가 던지듯 뿌렸다. 영상에서는 이 동작을 낚싯줄 던지기에 빗댄다. 그래서 어떤 선은 밧줄처럼 굵고, 어떤 선은 머리카락처럼 가늘다.
쓴 물감도 미술용이 아니다. 가정용 에나멜 도료다. 페인트 가게에서 파는 것. 미술관 기록에는 이 그림의 재료를 캔버스에 에나멜로 적어 두었고, 성분을 더 따지면 유성 알키드 수지다. 물감이 통에서 바로 떨어지기도 했다. 바닥에 누운 캔버스 위에서 물감이 천천히 마르는 동안 서로 흘러들어 고이고 엉긴다. 영상은 그 엉긴 자리를 클로즈업으로 보여 준다.
색은 많지 않다. 검정과 흰색, 그리고 배경으로 물러나는 듯한 베이지. 여기에 청록색 몇 줄기가 그림 전체를 가로지른다. 큐레이터는 이 청록을 '악센트'라고 부른다. 화면에서 그 색을 찾아 따라가 보면 큰 그림이 한 덩어리로 묶이는 게 보인다.
재미있는 대목은 끝에 있다. 폴록 그림에는 작업실 바닥의 먼지나 부스러기가 물감에 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림에는 다른 캔버스에서 옮겨 온 붉은 물감 점이 하나 있다. 옆에서 다른 그림을 작업하다 튄 것이다. 큐레이터가 찾아보라고 한다. 영상에서는 어딘지 알려 주지 않는다.
바닥에 펼친 캔버스, 막대기와 흙손, 가정용 에나멜. 그리고 다른 그림에서 튀어 온 붉은 점 하나.
바닥에 눕혀 부었다는 게 왜 사건이었나

그림은 이젤에 세운 캔버스에 붓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그 전제를 한꺼번에 버린 게 폴록이다. 1947년 무렵부터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묽힌 물감을 붓거나 떨어뜨리는 방식을 밀고 나갔고, 그게 그의 주된 방법이 됐다. 붓도 이젤도 캔버스 틀도 없다. 그려진 것도 없다. 크기는 방 하나를 채운다. 당시 관객 대부분은 당황했다.
이 그림을 둘러싼 이름이 몇 개 있다. 폴록과 윌렘 드 쿠닝, 마크 로스코, 리 크래스너 같은 뉴욕 화가들을 묶어 추상표현주의 또는 뉴욕 화파라고 부른다. 정식 모임은 아니었다. 다만 그림을 크게 그리고, 즉흥과 과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이 겹친다. 평론가 해럴드 로젠버그는 1952년에 캔버스가 무엇을 그리는 공간이 아니라 행동하는 무대가 됐다며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을 붙였다. 폴록의 헛간 바닥이 바로 그 무대다.
영상 끝에서 큐레이터가 하는 말이 이 맥락에 얹힌다. 폴록은 기술도 사회도 크게 바뀌던 시기에 그림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매달렸고, 그게 자기 자신과 그 순간에 붙어 있게 해 줬다는 것. 그림을 오래 보는 이유를 큐레이터 나름대로 답한 대목이다.
폴록은 1956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 이듬해인 1957년에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크래스너에게서 이 그림을 사들였다. 지금은 5번가 본관 899번 전시실에 걸려 있다. 미술관 정책상 웹에서는 확대해 볼 수 없게 해 두었다. 그래서 이 영상의 클로즈업이 더 값지다.
붓도 이젤도 틀도 없다. 1957년, 화가가 죽은 이듬해에 미술관이 크래스너에게서 샀다.
왜 볼 만한가
이 그림은 사진으로 보면 그냥 얽힌 선이다. 실물 앞에 서면 다르다고들 하는데, 그 다름의 정체가 이 영상에 있다. 굵기가 다른 선, 고여서 굳은 물감, 박힌 부스러기, 튀어 온 붉은 점. 눈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알고 나면 5미터짜리 그림이 갑자기 읽힌다.
짧다는 것도 장점이다. 3분이면 끝난다. 다 보고 나서 그림 전체 이미지를 한 번 더 열어 보면, 처음 봤을 때와 다른 그림처럼 보인다. 가을에 이름이 붙은 그림을 가을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알고 나면 5미터짜리 얽힌 선이 읽히기 시작한다.
영상에서 볼 만한 곳
- 앞부분, 큐레이터가 이 그림 앞에서 발이 멈춘다고 말하는 대목. 이 영상의 태도가 여기서 정해진다
- '아무렇게나 뿌린 게 아니다'라고 못 박고 막대기·흙손·굳은 붓을 설명하는 장면. 낚싯줄 비유가 여기 나온다
- 검정·흰색·베이지 다음에 청록을 '악센트'라고 부르는 대목. 그 색을 따라가면 그림이 한 덩어리로 묶인다
- 물감에 박힌 부스러기와, 다른 캔버스에서 튀어 온 붉은 점 이야기. 어딘지는 안 알려 주니 직접 찾아야 한다
- 마지막, 변화가 큰 시기에 그림이 화가를 자기 자신에게 붙들어 뒀다는 말. 왜 이 그림을 오래 보는지에 대한 큐레이터의 답이다
5미터가 넘는 그림을 3분에 담을 수는 없다. 대신 이 영상은 어디를 봐야 하는지를 준다. 붉은 점 하나를 찾겠다고 화면을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새 선을 따라가고 있다. 그게 큐레이터가 말한 '물감을 따라간다'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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