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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동영상

심해 영상은 얕은 것부터 봐야 합니다 — 93미터에서 5,000미터까지 다섯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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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Ocean Day | The remarkable animals of the deep midwater · MBARI (Monterey Bay Aquarium Research Institute)

영상  5편 · 모두 합쳐 27분 남짓수심  93m에서 5,000m 아래까지채널  MBARI · 슈미트해양연구소 · 노틸러스보는 순서  얕은 곳부터 깊은 곳으로

심해 영상은 한 편씩 떼어 보면 다 비슷합니다. 검은 물속에 하얗고 물컹한 게 떠 있고 카메라가 따라갑니다. 그런데 수심을 축으로 세워 두고 얕은 것부터 이으면 이야기가 생깁니다. 93미터 물기둥에서 출발해 5,000미터 심해평원에서 끝나는 다섯 편을, 깊어지는 순서 그대로 놓았습니다. 순서대로 보시면 됩니다.

먼저 바닥이 아니라 물 한가운데를 봅니다

빛이 닿지 않는 물 한가운데를 떠다니는 반투명한 심해 젤리 생물들을 그린 수채화 일러스트

맨 위에 걸어 둔 첫 편은 바닥을 찍지 않습니다. 3분 20초 동안 카메라가 물 한가운데 떠 있고, 스물네 장면이 지나갑니다. 장면마다 수심이 적혀 있는데 93미터에서 1,569미터까지 오르내립니다. 같은 바다인데 깊이가 제각각인 이유는, 여기 사는 것들이 바닥에 매여 있지 않아서입니다.
물기둥은 붙잡을 데가 없는 공간입니다. 숨을 바위틈도, 알을 붙일 자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사는 몸들은 방향이 완전히 다르게 진화했습니다. 대부분이 물이고, 속이 다 비쳐서 그림자가 지지 않고, 헤엄치기보다 떠 있는 쪽을 택했습니다. 0분 51초에 나오는 뱀파이어오징어가 589미터에서 몸을 뒤집어 우산처럼 펴는 장면이 그 방식을 한눈에 보여 줍니다.
이 편에서 가장 깊은 장면은 3분 00초, 1,569미터입니다. 화면에 뜨는 이름이 Bathydevius caudactylus 인데 이 이름이 붙은 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초에 몬터레이만 앞바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어느 분류군에 넣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수수께끼 연체동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새 속, 새 종으로 정리된 논문이 나온 건 2024년입니다. 다 커야 14.5센티미터인 이 몸 하나를 두고 스무 해 넘게 이름을 못 붙였습니다.

물기둥은 지구에서 가장 넓은 생활공간인데, 사람이 가장 늦게 들여다본 곳이기도 합니다.

800미터 바위 능선에는 산호밭이 붙어 있습니다

The hidden deep-sea world just off Big Sur | Exploring Sur Ridge · MBARI (Monterey Bay Aquarium Research Institute)

두 번째는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캘리포니아 빅서 해안에서 서쪽으로 35킬로미터 떨어진 서릿지(Sur Ridge)라는 바위 능선입니다. 주변 심해저에서 500미터쯤 솟아 있고, 그 위쪽 800미터에서 1,300미터 사이에 산호와 해면이 밭처럼 자랍니다. 2013년에 MBARI와 미국 해양대기청이 함께 찾아낸 자리입니다.
영상에 붉은 점 두 개가 계속 따라다니는데 장식이 아닙니다. 크기를 재려고 쏘는 레이저입니다. 가로로 찍힌 두 점 사이가 29~30센티미터, 세로가 2.5센티미터입니다. 산호 가지가 얼마나 굵은지, 게 등딱지가 어느 정도인지 그 점을 기준으로 가늠하면 됩니다.
바닥 구간의 수심 표시는 836미터에서 1,920미터 사이를 오갑니다. 2분 56초에 나오는 블롭조각치는 1,473미터인데, 물 밖으로 꺼내면 흘러내리는 그 얼굴로 유명한 물고기입니다. 가장 깊은 장면은 3분 19초, 1,920미터의 파리지옥말미잘입니다. 촉수를 접었다 펴는 모양이 정말 파리지옥을 닮았습니다.
재생 시간이 9분 48초로 다섯 편 중 가장 깁니다. 그런데 마지막 2분쯤에서 카메라가 바닥을 떠나 다시 물기둥으로 올라갑니다. 8분 14초의 크리스마스트리관해파리가 437미터로, 이 편에서 제일 얕은 장면입니다. 앞 편에서 본 뱀파이어오징어도 723미터에서 한 번 더 나옵니다.

말이 없고 음악만 깔려 있어서, 화면을 켜 두고 다른 일을 해도 되는 편입니다.

2,478미터에서 100번도 못 본 오징어가 나옵니다

TWO Bigfin Squid Sightings in Micronesia?! | Nautilus Live · EVNautilus

세 번째부터 깊이가 확 벌어집니다. 미크로네시아 연방 해역, 아직 이름도 없는 해산 두 곳입니다. 첫 장면이 2,478미터, 다음이 2,700미터입니다. 앞의 두 편이 다룬 깊이의 두 배쯤 되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찍힌 건 큰지느러미오징어(Magnapinna)입니다. 야생에서 관찰된 기록이 아직 100번이 안 됩니다. 팔과 촉수가 몸에서 직각으로 꺾여 나와 실처럼 늘어지는데, 길게는 8미터까지 뻗습니다. 화면에 잡힌 몸통 크기와 늘어진 줄의 길이를 견줘 보면 그 비율이 어떤지 바로 보입니다.
먹는 방식도 이 생김새에 맞춰져 있습니다. 헤엄쳐 쫓아가지 않습니다. 촉수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채 가만히 가라앉으면서 뭔가 걸리기를 기다립니다. 걸리면 그때 입 쪽으로 끌어당깁니다. 먹이가 드문 깊이에서 힘을 아끼는 쪽을 고른 셈입니다.
이 장면을 담은 건 노틸러스호의 NA180 탐사입니다. 7월 25일부터 8월 16일까지 마리아나 제도 일대를 돌았고, 리틀 헤라클레스와 아탈란타 두 대의 원격조종잠수정을 내렸습니다.

한 번의 탐사에서 이 오징어를 세 번 봤습니다. 100번이 안 되는 기록에 한 항차가 3을 보탰습니다.

4,000미터 아래에서 280도짜리 굴뚝이 나왔습니다

A Deeper Understanding | The Doldrums Fracture Zone · Schmidt Ocean Institute

네 번째는 대서양으로 넘어갑니다. 적도 바로 위, 브라질 북동 해안에서 1,300킬로미터쯤 떨어진 돌드럼스 단열대입니다. 대서양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르는 해령을 옆으로 툭 끊어 놓은 지형이라고 보면 됩니다. 판이 어긋나면서 생긴 주름과 금이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연구선이 35일을 머물면서 수심 4,000미터쯤에서 열수분출공 지대 두 곳을 찾았습니다. 큰 쪽은 축구장 열네 개를 붙여 놓은 넓이에 분출공이 스물세 개 있고, 그중 열세 개가 지금도 뿜고 있습니다. 나오는 물 온도가 280도입니다. 그 깊이의 압력이 아니었으면 진작 끓어 넘쳤을 온도입니다.
이 두 곳이 특이한 이유는 열의 출처가 하나가 아니라서입니다. 화산 활동으로 데워지는 보통의 분출공과 달리, 맨틀 암석이 바닷물과 만나 스스로 열을 내는 반응이 함께 얽혀 있습니다. 해령을 따라서는 분출공이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이렇게 어긋난 단열대 안쪽에서 찾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생물 쪽에서도 건진 게 있습니다. 세 번째 편에서 본 그 큰지느러미오징어가 여기서도 두 마리 잡혔고, 머리가 투명하고 눈이 원통처럼 위를 보는 통안어 한 종은 헤엄치는 모습이 이번에 처음 찍혔습니다.

분출공 주변에는 홍합과 새우가 빽빽합니다. 햇빛이 한 톨도 닿지 않는 자리에서 화학반응만으로 굴러가는 생태계입니다.

5,000미터를 넘기면 물컹한 것만 남습니다

Abyssal Plain Animals of the Squishy Variety | Nautilus Live · EVNautilus

퇴적물이 두껍게 깔린 심해평원 바닥 위를 반투명한 해삼과 해파리가 해류를 타고 떠가는 장면을 그린 수채화 일러스트

마지막은 북마리아나제도 미국 해역의 북동쪽 끝, 심해평원입니다. 세 번째 편과 같은 항차에서 찍혔는데 깊이가 다릅니다. 여기 나오는 것들은 모두 5,000미터보다 아래에 삽니다.
평원이라는 말 그대로 굴곡이 거의 없습니다. 퇴적물이 두껍게 쌓인 바닥이 어디까지고 이어집니다. 숨을 곳도 없고 잡을 것도 없으니, 여기서도 살아남은 몸들은 하나같이 물렁합니다. 껍데기나 가시로 버티는 대신 해류에 몸을 맡기는 쪽을 택했습니다.
간판 격은 에닙니아스테스라는 해삼입니다. 바닥을 기지 않고 헤엄칩니다. 몸을 덮은 막을 펄럭여 물속으로 떠오른 다음 해류를 타고 흘러가다가, 먹을 게 남은 퇴적물 위에 내려앉습니다. 하는 일은 모래알 사이에 낀 유기물을 훑어 먹는 것입니다. 생김새 때문에 '머리 없는 닭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실제로 보면 그 별명이 과장이 아닙니다.
보라색 히드로해파리와 속이 다 비치는 빗해파리도 같은 해류를 씁니다. 이쪽은 먹이를 찾아다니지 않고, 쏘는 세포나 끈끈한 세포가 달린 줄을 늘어뜨린 채 흘러갑니다. 걸리는 동물플랑크톤이 곧 끼니입니다. 방식만 놓고 보면 2,478미터의 그 오징어와 똑같습니다. 깊어질수록 쫓아가는 사냥이 줄고 기다리는 사냥이 늘어납니다.

바닥까지 내려온 먹이가 워낙 적어서, 여기서는 헤엄쳐 쫓는 쪽이 손해입니다.

영상에서 볼 만한 곳

  • 5분밖에 없으면 첫 편만 봅니다. 3분 20초에 물기둥 생물 스물네 장면이 다 들어 있습니다.
  • 첫 편 3분 00초 — 1,569미터의 그 연체동물. 이름을 붙이는 데 스무 해 넘게 걸린 몸입니다.
  • 둘째 편 3분 19초 — 1,920미터의 파리지옥말미잘. 다섯 편을 통틀어 바닥에서 가장 깊은 장면입니다.
  • 셋째 편은 4분 46초 내내 오징어 두 마리입니다. 몸통과 늘어진 촉수의 길이를 눈으로 견줘 보면 됩니다.
  • 배경으로 오래 틀어 둘 거면 둘째 편(9분 48초)입니다. 말이 없고 음악만 깔립니다.

다섯 편을 이어 붙이고 나면 깊이가 그냥 숫자가 아니라는 게 보입니다. 얕은 쪽에서는 몸을 숨기고 쫓아가는 방식이 통하고, 깊어질수록 힘을 아끼고 기다리는 쪽으로 넘어갑니다. 5,000미터까지 내려가면 남는 건 물렁하고 투명한 몸뿐입니다. 순서를 바꿔서 보면 이 흐름이 잘 안 보입니다. 얕은 것부터 차례대로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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