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플라잉 (N.Flying) ‘잔불 (Still)’ MV · N.Flying (엔플라잉)
엔플라잉 미니 9집 타이틀곡 잔불을 하루의 상황 다섯에 나눠 걸었습니다. 식었다는 말을 들은 날은 2절, 찬바람 부는 퇴근길은 브릿지, 노을 지는 길은 마지막 두 줄이에요.
식었다는 말을 들은 날에는 2절 첫머리부터
2절은 스스로를 가엾다고 부르면서 시작해요. 그리고 바로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다음 줄이 이 곡에서 제일 아픈 자리예요. 네 말대로 난 식어 버렸다고 인정해요.
그런데 거기서 끝내지 않아요. 식긴 했어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한 줄을 더 붙입니다. 영어 제목 Still 이 정확히 이 한 줄에 걸려 있어요. 여전히, 아직도라는 뜻이니까요.
회사에서든 오래 만난 사람한테서든,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들은 날이 있잖아요. 틀린 말도 아니라 반박도 못 하고 집에 오는 날. 그런 날엔 1절은 넘기고 2절부터 틀면 돼요.
남이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서 그 위에 내 말을 하나 얹는 순서예요. 변명보다 그게 덜 초라합니다. 이 곡이 그걸 3분 안에 보여 줘요.
식어 버렸다는 상대의 말을 먼저 인정하고, 그래도 살아 있다고 한 줄 덧붙이는 2절이 이 곡의 중심이에요.
옛날 사진첩을 넘기는 밤에는 1절과 후렴 뒤 네 줄
곡은 질문으로 열려요. 가장 뜨거웠던 순간들을 기억하냐고, 그게 다 작고 초라해졌냐고 물어요. 이어서 불이 여기저기 번지다가 까맣게 탔다는 그림이 나와요. 시작부터 다 타 버린 뒤예요.
그래서 1절은 지난 일을 돌아보는 자리예요. 휴대폰 사진첩을 몇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다가 손이 멈추는 밤에 맞아요. 반주도 이 구간은 일부러 낮게 깔려 있습니다.
후렴이 끝나면 짧은 네 줄이 붙어요. 번져 가는 마음과 꿈 없는 밤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다시 그때로 가 보겠다고 해요. 돌아보기만 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움직이겠다고 말하는 자리예요.
사진 넘기다 아쉬워지는 밤엔 처음부터 이 네 줄까지만 들어도 한 덩어리가 됩니다. 1분 남짓이에요.
1절은 이미 다 타 버린 뒤를 돌아보고, 후렴 뒤 네 줄에서 처음으로 그때로 다시 가 보겠다고 해요.
첫 찬바람이 부는 퇴근길에는 브릿지
브릿지는 한평생을 타면서 작아진다는 말로 들어가요. 불은 타는 만큼 줄어드니까요. 여기까진 좀 쓸쓸해요.
그다음이 재밌어요. 찬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린다고 해요. 꺼지지 않는다와 흔들린다가 한 문장에 같이 있어요. 안 흔들리는 척하지 않는 게 이 곡 화법이에요.
10월 중순이면 해 지고 나서 바람이 달라지잖아요. 겉옷 하나 덜 챙긴 걸 후회하면서 정류장까지 걷는 저녁, 그때 브릿지부터 틀면 가사랑 날씨가 그대로 겹쳐요.
이 대목에서 서로의 욕심이었다는 걸 둘 다 안다는 말도 지나가요. 누가 먼저 식었는지 따지지 않고 둘 다 알고 있었다고 묶는 거예요. 퇴근길에 들으면 그날 서운했던 일 하나쯤은 조금 가벼워집니다.
찬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브릿지가 10월 저녁 바람이랑 그대로 겹쳐요.
노을 지는 길에서는 마지막 후렴 대신 바로 앞 두 줄
브릿지가 끝나면 마지막 고비가 와요. 언젠가는 지금도 가장 빛나던 때가 될 거라고 하고, 하늘이 붉은 건 오늘이라서라고 말해요.
곡 전체가 그때, 그 순간, 예전 얘기만 하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오늘을 붙잡아요. 이승협도 이 곡을 두고 가장 뜨거운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지금을 즐기자는 얘기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 두 줄은 해 질 녘에 맞아요.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시간에 걷고 있다면 여기서부터 틀어 보세요. 가사가 말하는 붉은 하늘이 눈앞에 있으니까요.
후렴에선 눈시울이 붉다고 했던 노래가 끝에선 하늘이 붉다고 해요. 같은 색인데 울던 얼굴에서 위로 고개를 든 셈이에요.
그때 얘기만 하던 곡이 끝에서 처음으로 오늘을 말하는 두 줄이라, 노을 지는 시간에 맞아요.
다시 시작하기로 한 아침에는 첫 기타와 끝 기타
이 곡은 기타 솔로로 열고 기타 솔로로 닫아요. 차훈이 직접 설명했는데, 처음엔 담담하게 시작하고 끝에서 잔불이 다시 타오르듯 끝난대요. 같은 악기가 처음과 끝에서 온도가 달라요.
그 사이 마지막 두 줄은 평생을 지킨 내가 잔불이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해요. 처음 들을 땐 꺼져 가는 불 같은데, 앞의 3분을 다 듣고 나면 끝까지 안 꺼진 불로 들려요.
그만뒀던 운동을 다시 나가는 날, 접어 둔 계획을 다시 펼치는 날 아침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통으로 틀어 두면 돼요. 담담한 기타로 집을 나서서 뜨거운 기타로 도착하는 구조예요.
뮤직비디오도 같은 얘기예요. 각자 다른 시간을 살던 다섯 멤버가 혼자 불씨를 지키다가 다시 모여 큰 불을 피워요. 10월 8일에 올라와 사흘 만에 250만 회를 넘겼습니다.
담담한 첫 기타로 시작해 다시 타오르는 끝 기타로 닫는 곡이라, 다시 시작하는 날엔 통으로 듣는 게 맞아요.
이렇게 들으면 더 재미있다
- 후렴이 두 번 나오는데 앞에 붙는 말이 달라요. 처음엔 전부 쏟아 내겠다고, 두 번째엔 솔직히 말하겠다고 해요. 둘 다 지금이 사랑할 마지막이라는 말로 이어지는데, 쏟아 내던 사람이 털어놓는 사람으로 바뀌어요.
- 붉다는 말이 두 번 나와요. 후렴에선 데어서 붉어진 눈시울이고, 끝에선 오늘의 붉은 하늘이에요. 이 둘을 이어서 들으면 곡이 어디서 출발해 어디에 닿는지 보입니다.
- 차훈 말대로 첫 기타 솔로와 마지막 기타 솔로를 비교해 들어 보세요. 같은 밴드 소리인데 처음은 낮게, 끝은 크게 타요. 제목이 왜 잔불인지 기타가 먼저 설명해 줘요.
잔불은 꺼져 가는 불처럼 들리는 제목인데, 끝까지 들으면 안 꺼진 불이라는 얘기예요. 식었다는 말을 들은 날이든 노을 지는 퇴근길이든, 그날 맞는 대목 하나만 골라 들어도 충분합니다. 시간이 되면 앨범의 나머지 여섯 곡도 이어 들어 보세요. 멤버 셋이 따로 좋아하는 곡으로 우주먼지를 꼽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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